VfB 슈투트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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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VfB 슈투트가르트는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연고로 하는 축구 클럽으로, 1912년 창단되었다. 분데스리가가 출범한 1963년 이후 1부 리그에서 활동하며 1983-84, 1991-92, 2006-07 시즌에 우승을 차지했다. 2010년대 이후 1부와 2부를 오갔으며, 2023-24 시즌에는 리그 2위를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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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963년 분데스리가 창설 이래 VfB 슈투트가르트는 1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1974-75 시즌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시즌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한 후에는 꾸준히 1부 리그에 머물면서 중위권에서 상위권을 오가며 1983-84 시즌, 1991-92 시즌, 2006-07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2-13 시즌 이후 하위권에 머물렀고, 2016-17 시즌에는 41년 만에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017-18 시즌에 1부 리그로 복귀했지만, 2019-20 시즌에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등 최근에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가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2. 1. 창단과 초기 역사 (1893-1945)
1893년 9월 9일, 춤 베허에서 슈투트가르터 FV(Stuttgarter FV)가 창단되었다.[61] FV는 원래 럭비 클럽이었으며, 1908년에 축구부를 창단하였다. 이 팀은 지역 학교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카를 카우프만 선생의 지도 하에 빠르게 성장했다. 1909년, FV는 럭비 결승에서 FSV 1897 하노버에 3-6으로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62] 같은 해, FV는 남독일 축구 협회(Süddeutschen Fußballverband)에 가입하여,[63] 2부 리그인 B-클라세에서 활동했다. FV는 두 번째 시즌에 크로넨-클럽 칸슈타트와의 지역 결승에서 승리했지만, FV 추펜하우젠과의 경기에서 패하며 승격에는 실패했다. 1912년에 쉬드크라이스리가(Südkreis-Liga)로 승격하였다.
칸슈타터 푸스볼클럽(Cannstatter Fußballklub)은 1890년에 럭비 클럽으로 창단되었고, 이후 축구 클럽을 창단하였다. 1897년에 FC 크로네 칸슈타트(FC Krone Cannstatt)로 개칭하였고, 축구부만 남게 되었다.[64] 이 클럽은 남독일 축구 협회에 가입하여 2부리그에 속하게 되었고, 1904년에 1부리그로 승격하였다.

1912년 4월 2일, 슈투트가르터 FV와 크로넨-클럽 칸슈타트가 칸슈타트의 콩코르디아 호텔 회의를 통해 합쳐지며 버라인 퓌어 베베궁스슈필레 슈투트가르트(Verein für Bewegungsspiele Stuttgart)가 창단되었다.[59] 이 두 클럽은 중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며,[59] 영국인들로부터 럭비와 축구 같은 새로운 스포츠를 배우고 있었다. 슈투트가르트에 럭비를 처음 전한 사람은 1865년의 윌리엄 케일이었다.[60] 통합된 클럽은 뷔르템베르크 크라이스리가에 속해있다가 베지어크스리가 뷔르템베르크-바덴(Bezirksliga Württemberg-Baden)으로 옮겨졌고, 1927년에 타이틀을 획득하였다.
1933년, VfB는 홈구장을 네카어슈타디온으로 옮겼다. 같은 해, 독일 축구는 독일 제 3제국에 의해 16개의 가울리가(Gauligen)이라 불리는 1부리그로 개편되었다. 슈투트가르트는 가울리가 뷔르템베르크에 속하였고, 1935년, 1937년, 1938년, 1940년, 1943년에 우승하였다. 1944년-45 시즌, 가울리가 시스템이 붕괴되었고,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와의 라이벌 관계가 이 시기에 생겨났다. VfB의 가울리가 우승은 국가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하였으며, 1935년 그들은 FC 샬케 04에 패한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1937년 국가 플레이오프에서 3위를 획득한 이후, 슈투트가르트는 그 이후로 예선을 넘지 못하였다.
2. 2. 전후 재건과 분데스리가 출범 (1945-1975)
VfB는 1부 리그인 오베르리가 쉬드에서 1946년, 1952년, 1954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독일 챔피언쉽에 진출하여 1950년과 1952년에 우승을, 1953년에는 준우승을 하였다. 1950년대에는 DFB-포칼에서 두 번(1954년, 1958년) 우승했다. VfB는 8년간 4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이는 교통사고로 팔을 잃은 로베르트 슐린츠의 지도 하에 이루어졌다.[1] 그러나 1954년 FIFA 월드컵 선수로는 아무도 참가하지 못했다.1958년 FIFA 월드컵과 1962년 FIFA 월드컵의 실망스러운 결과에 따라, DFB는 1963년에 단일 1부 프로축구 리그인 푸스볼-분데스리가를 출범시켰다. 슈투트가르트가 1950년대에 획득한 우수한 성적은 분데스리가의 1963년 16개 원년 클럽 중 하나로 포함되도록 하였다. 이 클럽은 당시 슈바브 사회 단체의 아마추어 조직으로, 돈을 쓰는 데 인색하였고, 일부 선수는 투잡으로 생활하였다. 10여 년간 클럽은 대체로 중위권에 머물렀다. 이 당시 유명 슈퍼스타로는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길베르 그레스였다.
1972-73 시즌, 팀은 UEFA 컵 진출권을 처음으로 획득하였고, 1974년에 준결승에 진출하여, 이 시즌의 우승 팀인 페예노르트에 패하였다. (1-2, 2-2)
2. 3. 마여-포어펠더 회장 시대 (1975-2000)
VfB 슈투트가르트는 1970년대 중반, 축구계의 새로운 흐름이었던 클럽 후원 등을 놓치면서 재정난에 빠졌다. 돈을 투자하여 프로화에 발맞추려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1974-75 분데스리가 시즌 막판에는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지역 정치인 게르하르트 마이어-포어펠더가 새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며 16위로 시즌을 마감, 분데스리가에서 강등되었다. 2부 리그에서의 첫 시즌은 클럽 역사상 최악이었다. VfB는 11위로 시즌을 마쳤고, 심지어 지역 라이벌 SSV 로이트링겐과의 홈 경기에서는 1,200명의 관중 앞에서 패배하기도 했다.위르겐 순더만 감독 부임 후, 카를하인츠 푀르스터, 한시 뮐러, 골잡이 오트마어 히츠펠트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재편, 1976-77 2. 분데스리가에서 100골을 기록하며 2시즌 만에 분데스리가로 복귀했다.
젊은 선수단을 바탕으로 공격적이고 득점이 많은 경기를 펼치며 인기를 얻었지만, 경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1977-78 분데스리가에서 4위를 기록했고, 1990년대까지 53,000명 이상의 평균 관중 수를 유지하며 리그 기록을 세웠다. 1978/79 시즌에는 분데스리가에서 2위를 차지했다. 1979-80 UEFA컵 준결승에 진출했고, 1983-84 분데스리가에서는 헬무트 벤트하우스 감독의 지휘 아래 클럽의 세 번째 전국 타이틀이자 첫 번째 분데스리가 우승을 달성했다.
1986년 1985-86 DFB-포칼 결승에서는 바이에른 뮌헨에게 2-5로 패했다. 1989년에는 위르겐 클린스만을 앞세워 1989 UEFA컵 결승전에 진출했지만,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끌던 나폴리에게 패했다(1-2, 3-3).
1991-92 분데스리가에서 슈투트가르트는 분데스리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우승 경쟁 중 하나에서 골득실차로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제치고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국제 대회에서는 1991-92 UEFA컵 2라운드에서 스페인의 오사수나에게 패하며 탈락했다(2-3). 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1992-93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했지만, 크리스토프 다움 감독이 2차전에서 비유럽권 선수 4명을 교체하는 실수를 저질러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3차전에서 리즈 유나이티드에게 패하며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VfB는 요아힘 뢰프 감독과 함께 1997년 독일 컵에서 우승하며 다시 유럽 대회에 진출했다. 1998 유러피언 컵 위너스 컵 결승전에서는 스톡홀름에서 첼시에게 패했다. "마법의 삼각 편대" 중에서는 주장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만이 남았고, 조바니 엘베르와 프레디 보비치는 팀을 떠났다. 뢰프 감독은 계약을 갱신하지 않았고, 빈프리트 셰퍼가 그 자리를 대신했지만 한 시즌 만에 경질되었다.
이후 슈투트가르트는 발라코프와 같은 베테랑 선수들을 대체하기 위해 이적 시장에서 무분별하게 돈을 썼고, 그 결과 팀 성적은 중위권으로 떨어졌다.
2. 4. 2000년대 이후: 부활과 침체 (2000-현재)
1963년 DFB는 단일 1부 프로축구 리그인 푸스볼-분데스리가를 출범시켰다. 슈투트가르트는 1950년대의 우수한 성적을 바탕으로 분데스리가 원년 멤버 16개 클럽 중 하나가 되었다. 당시 슈투트가르트는 아마추어 조직이었고, 일부 선수들은 투잡으로 생활해야 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클럽은 주로 중위권에 머물렀으며, 이 시기 유명 선수로는 스트라스부르 출신의 길베르 그레스가 있었다.1972-73 시즌, 슈투트가르트는 처음으로 UEFA 컵 진출권을 획득했고, 1974년에는 준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이 시즌 우승 팀인 페예노르트에게 패했다. (1-2, 2-2)
게르하르트 마여-포어펠더 회장은 많은 빚과 실망스러운 결과로 인해 2000년에 사임하고, 만프레트 하스가 새 회장이 되었다. 하스 회장은 예산과 선수 연봉을 삭감해야 했다. 1976년 마여-포어펠더 회장 취임 이후, 팀은 유소년 출신 선수들을 중심으로 리빌딩을 해야 했다.
랄프 랑니크 감독은 UEFA 인터토토컵 우승을 바탕으로 리빌딩을 시작했으나, UEFA 컵에서의 부진과 2000-01 시즌 강등 위기로 인해 펠릭스 마가트로 교체되었다.
안드레아스 힌켈, 케빈 쿠라니, 티모 힐데브란트, 알략산드르 흘렙 등 젊은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슈투트가르트는 "마가트 유치원"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2002-03 시즌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이 성적을 바탕으로 2003-04 시즌에 참가하여 16강에 진출했지만, 첼시 FC에게 패하며 탈락했다. (0-1, 0-0)
이후 슈투트가르트는 2003-04 시즌 4위, 2004-05 시즌 5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권을 획득했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펠릭스 마가트 감독과 케빈 쿠라니, 필리프 람, 알략산드르 흘렙 등 주요 선수들이 팀을 떠났다.
2005-06 시즌 중반, 조반니 트라파토니 감독이 경질되고 아르민 페가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팀 주장 츠보니미르 솔도가 은퇴하고 다른 베테랑 선수들이 팀을 떠나면서 팀은 9위로 시즌을 마감했고, 4년 만에 유럽대항전 진출에 실패했다.
1963년 분데스리가 창설 이후 1부 리그에 속해 있었지만, 1974-75 시즌에는 2부 리그로 강등되기도 했다. 2시즌 만에 1부 리그로 복귀한 후에는 꾸준히 1부 리그에 머물면서 중위권에서 상위권을 오가며 1983-84 시즌, 1991-92 시즌, 2006-07 시즌에는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12-13 시즌 이후 하위권에 머물렀고, 2016-17 시즌에는 41년 만에 2부 리그로 강등되었다. 2017-18 시즌에 1부 리그로 복귀했지만, 2019-20 시즌에 다시 2부 리그로 강등되는 등 최근에는 1부 리그와 2부 리그를 오가고 있다.
2. 4. 1. 마가트 감독 시대 (2001-2004)
제공된 원본 소스에는 '마가트 감독 시대 (2001-2004)'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해당 섹션에 대한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이전 답변과 동일하며, 주어진 원본 소스에 해당 내용이 없기 때문에 변경할 수 없습니다.)2. 4. 2. 슈타우트 회장 시대 (2003-2011)
2003년 6월 26일, 에르빈 슈타우트가 CEO 겸 회장으로 취임하여 재정 문제를 개선했다. 당시 챔피언스 리그에 출전했으나 만족스러운 보강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챔피언스 리그에서의 활약으로 인한 수익과 마가트 감독 시절 활약한 주전 선수의 방출로 인한 이적료 덕분에 한때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상황이 개선되었다. 또한 마가트 감독 시절 활약한 호르스트 헬트가 현역 은퇴 후 제너럴 매니저로 취임한 이후 팀 구성도 명확해졌으며, 2006-07 시즌에는 리그 우승, 2007-08 시즌과 2009-10 시즌에는 챔피언스 리그 출전을 달성했다.2004-05 시즌에는 마가트가 바이에른 뮌헨으로 떠나고, 마티아스 자머가 감독으로 취임했지만 최종 순위는 5위였다. 2005-06 시즌부터는 조반니 트라파토니를 감독으로 영입하고, 욘 달 토마손을 영입하는 등 더 큰 도약을 목표로 했지만, 마가트 감독 시절 주전 선수 방출로 인한 전력 저하, 결정력 부족과 팀 전체의 의지 통일 실패로 중위권을 맴돌았다. 이 시즌 도중에 트라파토니가 사임하고, 아르민 페가 감독으로 취임했다.
페 감독 지휘 하의 2006-07 시즌에는 약진을 이루었다. 이 시즌부터 합류한 파벨 파르도는 즈보니미르 솔도를 연상시키는 존재감을 발휘했다. 리카르도 오소리오와 마리오 고메스, 토마스 히츨슈페르거 등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공격 유닛이 충분히 기능을 발휘했고, 티모 힐데브란트가 선방을 연발하며 팀을 이끌었다. 바이에른 뮌헨, 베르더 브레멘, 샬케 04를 제치고 15시즌 만에 5번째 우승을 차지했다.[32]
2007-08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에서 FC 바르셀로나, 리옹, 레인저스와 같은 조가 되었다. 티모 힐데브란트의 발렌시아 이적과 주전 선수의 부상 등으로 팀 퍼포먼스가 저하된 슈투트가르트는, 1승 5패로 조별 리그 최하위로 탈락했다.
2008-09 시즌에는 UEFA 인터토토컵에 출전하여 UEFA컵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시즌 초반에는 고전했지만, 옌스 레만이 합류하면서, 힐데브란트가 떠난 이후 고민했던 주전 골키퍼에 대한 해결책이 마련되었다. 최종적으로 3위까지 순위를 올렸다.
2009년 여름, 마리오 고메스를 바이에른 뮌헨에 매각하고, 그 자금으로 파벨 포그레브냐크, 즈드라브코 쿠즈마노비치 등 동유럽 출신 실력자들을 영입했다.
2010-11 시즌은, 사미 케디라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에 대해, 마르틴 하르니크의 영입 등으로 팀의 젊은 피 수혈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시즌 중에 감독이 두 번이나 교체되는 이례적인 상황에 빠졌다. 겨울 이적 시장에서는 오카자키 신지가 합류했다. 2011년 7월 15일, 에르빈 슈타우트가 임기 만료로 퇴임했다.
2. 4. 3. 2010년대 이후: 강등과 승격 반복
1963년 분데스리가가 창설된 이래 1부에 소속되어 있었지만, 1974-75 시즌에는 2부로 강등되었다. 2시즌을 거쳐 1부로 복귀한 후에는 1부에 계속 머물면서 중위권~상위권을 유지하며 1983-84 시즌, 1991-92 시즌, 2006-07 시즌에는 리그 우승도 달성했다. 그러나 2012-13 시즌 이후에는 하위권에 머물렀고, 2016-17 시즌에는 41년 만에 2부 리그 강등을 경험했다. 2017-18 시즌에는 1부로 복귀했지만, 2019-20 시즌에 다시 2부로 강등되는 등 최근에는 1부와 2부를 오가는 상황이 되었다.2. 4. 4. 회네스 감독 시대 (2023-현재)
제바스티안 회네스 감독 시대는 2023년에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3. 경기장

VfB 슈투트가르트의 홈구장은 MHP아레나이며, 1933년에 처음 건설되었다.[65] 경기장은 네카어강 변에 위치하며, 바트 칸슈타트 (Bad Cannstatt)의 메르세데스 벤츠 박물관과 메르세데스 벤츠 공장 인근의 메르세데스 거리 (Mercedes-Straße)에 있다. 여러 차례 리모델링을 거친 후, 경기장은 55,896명(국가대항전에서는 50,0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른 대부분의 분데스리가 경기장과는 다르게, 이전의 네카어슈타디온은 필드 가장자리에 육상 트랙이 설치되어 있었으나, 2011년에 축구 전용 경기장으로 바뀌었다. 1974년 FIFA 월드컵과 2006년 FIFA 월드컵 경기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2006년 FIFA 월드컵에서는 4번의 조별 리그 경기, 1번의 16강 경기 (잉글랜드와 에콰도르의 경기), 그리고 3위 결정전 (독일과 포르투갈의 경기) 등 총 6경기를 개최하였다. 2008-09 시즌인 2008년 7월 30일, 아스널 FC와의 프리시즌 경기를 기점으로 경기장은 메르세데스-벤츠 아레나로 개칭되었다.[65] 2008-09 시즌을 시작으로 축구 전용 구장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시작하였고, 2011년 리모델링 완료 후 60,000명으로 수용 인원이 증가하였다.
4. 라이벌 관계
VfB 슈투트가르트의 전통적인 라이벌은 같은 슈투트가르트를 연고로 하는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이다. (빨강 - Die Roten과 파랑 - Die Blauen의 라이벌전) 그러나 슈투트가르트 키커스가 1992년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된 이후로는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다.
슈투트가르트 키커스와의 경기 빈도가 줄어들면서, 카를스루에 SC와의 바덴뷔르템베르크 더비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이외에도 바이에른주의 FC 바이에른 뮌헨과도 라이벌 관계 (쉬드 더비)를 형성하고 있는데, FC 바이에른 뮌헨이 지오바니 에우베르, 펠릭스 마가트, 마리오 고메스 등을 VfB 슈투트가르트에서 영입해가면서 주적 관계로 인식되기도 한다.[1]
5. 선수
VfB 슈투트가르트는 현재 야코(Jako) 스포츠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다. 홈 유니폼은 가로 빨간색 줄무늬가 있는 흰색 셔츠, 흰색 반바지, 흰색 양말이며, 원정 유니폼은 빨간색 셔츠, 빨간색 반바지, 빨간색 양말이다. 세 번째 유니폼은 짙은 녹색 또는 노란색 셔츠, 짙은 녹색 또는 노란색 반바지, 짙은 녹색 또는 노란색 양말로 구성된다.
VfB 슈투트가르트는 1973-74 시즌 UEFA 컵에서 준결승까지 진출하였고, 1979-80 시즌 UEFA 컵 준결승, 1988-89 시즌 UEFA 컵 결승에 진출하였다. 1997-98 시즌 UEFA 컵 위너스컵에서는 결승에 진출했으나 첼시에 패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57]
5. 1. 현재 선수 명단 (2024-25 시즌)
[58]- '''감독''': 세바스티안 회네스
5. 2. 임대 선수 명단
5. 3. 역대 주요 선수
2012년, FV 슈투트가르트와 크로넨-클럽 칸슈타트의 합병 100주년을 기념하여, 팬 투표를 통해 "100주년 기념 베스트 11"이 선정되었다.[28]
6. 코칭 스태프
VfB 슈투트가르트의 코칭 스태프는 감독, 골키퍼 코치, 피트니스 코치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코칭 스태프와 역대 감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각각 #현재 코칭 스태프, #역대 감독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6. 1. 현재 코칭 스태프
6. 2. 역대 감독
다음은 1920년부터 현재까지 VfB 슈투트가르트의 역대 감독 목록이다.[66][29]
7. 클럽 경영진
- Dieter Hundt|디터 훈트de 회장, 기업가
- Erwin Staudt|에르빈 슈타우트영어 CEO & 회장 (2003년 6월 26일 - 2011년 7월 17일)
- Gerd E. Mäuser|게르트 E. 모이저영어 회장 (2011년 7월 17일 - 2013년 7월 22일)
- Bernd Wahler|베른트 바엘러영어 회장 (2013년 7월 22일 - 2016년 5월 15일)
- Wolfgang Dietrich (businessman)|볼프강 디트리히영어 회장 (2016년 8월 15일 - 2019년 7월 15일)
- 토마스 히츨스페르거 회장 (2019년 10월 8일 - 2022년 3월 31일)
- Claus Vogt|클라우스 포크트영어 사장 (2019년 12월 15일 - )
- Alexander Wehrle|알렉산더 베어레영어 회장 (2022년 3월 21일 - )
8. 역대 성적
2010–2019
